문화 일반

동의보감은 진도홍주가 만들었다?

January 11.2019
  • 한국의 전통주를 공부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다양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인물이 엮일 때가 있다. 이유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술이라는 매개체가 늘 존재했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고 세조와 팔씨름을 해서 이겨버린 신숙주 이야기, 만취한 상태로 세조에게 양위를 권해서 죽임을 당한 계유정난 1등 공신 양정 그리고 금주령을 다 풀어버린 애주가 정조까지 술이 우리 역사와 문화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진도홍주와 동의보감이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동의보감에 진도홍주가 등장한다는 1차원 적인 이야기가 아니다(물론 등장한다). 연결고리는 조선 연산군 시절에 일어난 갑자사화에서 일어난다. 갑자사화는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연산군의 어머니인 윤 씨를 폐비시키면서 관계된 자를 모두 사형 또는 유배를 시킨 조선의 두 번째 사화다.

  • 진도홍주에서 붉은 색을 나오게 하는 지초. 지초란 사자성어 지란지교의 난초꽃과 지초꽃 중 지초의 뿌리다. 한방에서는 산삼, 삼지구엽초와 함께 3대 선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진출처 전통주 갤러리
    ▲ 진도홍주에서 붉은 색을 나오게 하는 지초. 지초란 사자성어 지란지교의 난초꽃과 지초꽃 중 지초의 뿌리다. 한방에서는 산삼, 삼지구엽초와 함께 3대 선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진출처 전통주 갤러리
    진도만의 특별한 술 진도홍주
    진도홍주는 현재 진도만의 특산품이다. 진도에서만 나오는 만큼 농식품부 지리적 표시제를 받은 제품이기도 하다. 이름 그대로 정말 붉은 술로 한방에서 3대 선약이라고 불리는 지초를 침출시킨 붉은색의 증류식 소주다. 원래 진도홍주는 진도가 시작은 아니었다. 고려 시대 원나라에서 건너온 홍국(붉은 누룩)으로 빚은 술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고려 말부터는 국내에서 제조되었고 항몽 삼별초군 진도 주둔 및 유배된 양반으로부터의 전수, 함경, 평안도 주민의 입도 및 의료 처방에 따른 독자 발전 등 다양한 설이 있다.

  • 진도홍주를 내리는 모습. 소줏고리를 통해 내려온 소주 원액이 지초의 색과 향을 머금고 내려온다. 출처 대대로영농조합법인(진도홍주)
    ▲ 진도홍주를 내리는 모습. 소줏고리를 통해 내려온 소주 원액이 지초의 색과 향을 머금고 내려온다. 출처 대대로영농조합법인(진도홍주)
    연산군의 갑자사화를 피하게 해 준 진도홍주

    진도홍주가 진도에서 뿌리를 내리게 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조선 성종 때, 우의정까지 올라간 허종이라는 인물에서 시작한다. 바로 홍주가 허종의 가문을 살려줬다는 것이다. 성종에게 총애를 받던 허종은 갑자사화의 시작이 된 연산군의 어머니 윤 씨를 폐비시키는 어전회의에 부름을 받았다. 왕비를 폐비시키는데, 중요 인물이 빠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당시 연산군은 아직 세자로 책봉되지 않은 상태. 하지만 행여나 연산군이 왕이 되면 피바람이 불 것이라는 예상을 못 할 리 없다. 마음 같아서는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명분 없이 안 갈 수도 있었다. 왕의 어명을 어길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야사에 따르면 허종은 어전회의에 참여하려고 했던 차에 부인(또는 누나)으로부터 술 한 사발을 받았다고 한다. 이 술이 바로 홍주였다. 술을 준 이유가 담력을 키워 어전회의에 참여하라고 했던 것인지, 또는 술 취한 것을 빌미로 참여하지 말라는 것인지는 알려진 바 없다. 확실한 것은 홍주가 지금과 같은 증류식 소주 계열이라면 알코올 도수는 가볍게 40도가 넘었을 것이다. 이렇게 도수 높은 홍주를 마신 허종은 취기에 말에서 낙마하고, 크게 다쳤다고 한다. 덕분에 결국 연산군의 어머니 윤 씨를 폐비시키는 어전회의에 참석을 못 했고, 연산군이 즉위한 이후에도 갑자사화를 비켜갈 수 있었다. 가문의 멸문지화를 막았다는 내용이다. 이후에 이 붉은색의 홍주는 가문을 지켜주는 술이 되었고, 후손이 진도로 낙향, 지금의 진도홍주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진도로 낙향한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될 수 있으나, 전라남도 지역에 지초가 많이 나기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고, 덕분에 이 진도홍주의 붉은색은 여전히 이 지역에서는 행운의 색으로 인정받고 있다.

    ※ 정사에서는 허종이 홍주를 마시고 낙마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다만, 허종은 윤씨를 폐비를 결정 짓는 어전회의를 가지 않았고, 가문의 멸문지화는 당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홍주를 마시고 낙마한 허종의 집안, 문학, 예술, 의학에 뛰어나

    흥미로운 것은 허종의 집안에 특별한 인물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단순한 정치가가 아니다. 홍길동전의 허균, 조선 중기의 여류 문화가 허난설헌, 그리고 가장 유명한 동의보감의 허준이다. 모두 양천 허 씨 인물이다. 흥미롭게도 갑자사화를 면한 허종은 단순한 정치가로 볼 수도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바로 의방유취(醫方類聚)와 더불어 조선 3대 의서라고 불리는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언해(한글로 번역)한 인물이다. 향약집성방은 우리나라 약재 사전의 효시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총 85권으로 된 이 책은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만든 것으로, 중국 약재를 국내산으로 대체하기 위해 한국의 토종 약재를 연구한 방대한 의서다.

    전문가들은 향약집성방이 없었다면, 동의보감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허종이라는 인물이 갑자사화와 연루되어 부관참시(허종은 연산군 즉위해에 세상을 떠난다) 또는 그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했다면, 허균이나 허준과 같은 인물들이 당시에 활약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진도 홍주(정확히는 홍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동의보감을 태어나게 한 나비효과를 톡톡히 보여준 셈이다.

  •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늘 변함없는 색의 소나무와 잣나무를 선비들의 기개에 빗대었다. 선비들의 화풍인 대표적인 남종화 중 하나로 불린다. 출처 문화재청
    ▲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늘 변함없는 색의 소나무와 잣나무를 선비들의 기개에 빗대었다. 선비들의 화풍인 대표적인 남종화 중 하나로 불린다. 출처 문화재청
    영화 스캔들에 등장하던 운림산방을 운영하던 추사 김정희의 제자 허련, 바로 진도홍주를 가지고 온 허종의 집안

    그렇다면 진도로 낙향한 허종의 후손은 무슨 일을 했을까? 가장 유명한 인물은 바로 조선 말기 소치 허련이라는 화가다. 추사 김정희의 제자이자 남종화라는 특유의 화법을 정착시켰다. 남종화는 학식과 교양을 쌓은 문인들이 여가를 즐기기 위해 수묵과 담채(淡彩)를 사용해 내면세계의 표출에 치중하며 그린 그림이다. 반대적 개념은 북종화로, 직업적인 전문 화가들을 중심으로 장식적인 느낌이 드는 그림이다. 보통 선비 및 학식을 가진 선비들은 남종화를 중심으로 그리고 화원의 화가들이 북종화를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허련의 스승 김정희는 “압록강 동쪽으로 소치 허련을 따를만한 화가가 없다고 할 정도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진도 최고의 명소 중 한 곳인 운림산방. 이 이름은 추사 김정희가 지은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진 출처 전통주 갤러리
    ▲ 진도 최고의 명소 중 한 곳인 운림산방. 이 이름은 추사 김정희가 지은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진 출처 전통주 갤러리
    흥미로운 것은 이 허련이란 인물이 화실을 운영했는데, 바로 진도의 명소 중 한 곳인 운림산방이라는 화실이다. 배우 배용준 씨와 전도연 씨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두 사람은 운림산방의 연못에서 뱃놀이를 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이 운림산방이라는 이름 추사 김정희가 지어준 것이었다.

    허련의 집안은 몰락한 양반의 집안이라 계속 운영을 하지 못해 매각을 하지만 다시 손자 남동 허건이 매입, 이후 진도군청에 기증을 한다. 허건 역시 1983년 대한민국예술원 원로회원에 선출되는 등 남도의 최고 화가로 활약한다.

    그는 1976년 남농상(南農賞)을 제정하여 후배 화가와 서예가들을 후원하였으며, 자신의 작품은 물론, 할아버지인 허련의 작품 등 고미술품과 수석들을 아낌없이 목포시에 기증하고 남농기념관을 지어 후배들로 하여금 그의 예술세계를 보고 이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 남농 허건의 조카가 2013년 작고하신 진도홍주의 무형문화재 허화자 씨였다. 허화자 선생이 작고하신 것은 무척 슬픈 일이지만, 이제 진도 홍주는 가문이 술이 아닌 진도 술이 되었다. 진도 내 5곳의 양조장에서 진도홍주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 다양한 진도홍주.출처 전통주 갤러리
    ▲ 다양한 진도홍주.출처 전통주 갤러리
    다양한 방면으로의 영역 확대가 되는 우리 문화, 그것이 바로 전통주

    진도홍주의 허종 가문(허균의 직계 후손이기도 함)이 운림산방의 주인이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향약집성방이라는 한의서를 만든 것 까지는 몰랐다. 동의보감이 진도홍주까지 연결되는 것은 10년 내내 전통주 업계에 있던 나도 생소했던 내용이었다.

    허종이 한의서를 썼다는 것을 알고, 그 내용이 약초에 관련된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가 왜 굳이 지초라는 약초를 넣은 홍주를 마셨으며, 왜 그 후손이 진도로 낙향했는지도 이해가 갔다. 더불어 허균, 허난설헌, 허준에 이어 운림산방을 세운 허련과 추사 김정희까지도 이어졌다. 그리고 이 집안이 문학과 예술, 그리고 의학에 특화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진도군과 목포시에 모든 작품과 재산을 기증할 만큼의 멋진 집안이라는 것까지도 말이다.

    전통주를 통해 갑자사화라는 역사적 사실과 조선의 멋진 의학서를 알았고, 그리고 선비들의 혼이 담긴 남종화라는 화풍, 그리고 그 집안이 현대에도 기증을 통해 영혼이 살아있다는 것, 나는 이러한 것을 전통주를 통해 배우고 익혔다.

    결국 전통주는 술 하나만 알려주지 않는다. 나와 상관없을 듯한 세상의 다양한 점을 선으로 이어주는 매개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전통주의 최고의 가치인 것이다.

  • 진도와 해남사이에 있는 명량대첩의 전승지 울돌목. 세찬 물살이 특징으로 진도 명소 중 한 곳이다
    ▲ 진도와 해남사이에 있는 명량대첩의 전승지 울돌목. 세찬 물살이 특징으로 진도 명소 중 한 곳이다

  • 동의보감은 진도홍주가 만들었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일본 릿쿄(立教) 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10년 전 막걸리 400종류를 마셔보고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서 포털사이트에 제공하면서 본격적인 주류칼럼니스트로 활동한다. 가수 겸 배우 김창완 씨와 SBS 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서 전통주 코너를 2년 이상 진행했다. 최근에는 O tvN의 '어쩌다 어른'에서 술의 역사 강연을 진행하였으며. '명욱의 동네 술 이야기' 블로그도 운영 중이며,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이 있다. 현재는 SBS 팟캐스트 말술남녀와 KBS 제1 라디오 김성완의 시사야에서 <불금의 교양학> 코너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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